동방견문록 ②—두 개의 아르메니아, 그리고 노략질이 두려운 모술 왕국

1회에서는 폴로 일행이 25년 만에 베네치아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책에 등장하는 두 개의 아르메니아와 그 주변 지역, 모술 왕국의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이 땅들은 지금 어디인가?
마르코 폴로의 기록에 등장하는 '두 개의 아르메니아'와 그 주변은 오늘날 튀르키예 동부, 아르메니아 공화국, 조지아, 이란 북서부, 이라크 북부에 걸쳐 있는 땅입니다. 모술 왕국은 이라크 북부 모술 주변을 가리킵니다.


두 개의 아르메니아, 몰락한 귀족들

아르메니아는 대아르메니아와 소아르메니아 둘로 나뉩니다. 소아르메니아는 오늘날 튀르키예 남부·남동부 해안 지역으로, 타타르에 복종하는 왕이 다스리는 땅입니다. 도시와 성채가 많고 부족한 것이 없으며, 모든 종류의 짐승과 새를 사냥할 수 있는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르코 폴로는 이곳 귀족들의 변화를 안타깝게 전합니다. 예전에는 뛰어난 전사였던 이들이 지금은 비루하고 술독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향신료가 모이는 항구, 라이아스

소아르메니아의 해안에는 라이아스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오늘날 튀르키예 아다나 지역 일대로 비정되는 이 항구는, 내륙에서 오는 향신료와 명주실·금실로 짠 고급 직물, 비단, 금과 그 밖의 많은 물건이 모여드는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베네치아와 제노바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상인들이 이곳으로 와서 자신들이 생산한 물건을 팔고 필요한 것을 사 갔습니다. 지중해 무역망이 아나톨리아 동부의 이 작은 항구까지 뻗어 있었던 셈입니다.

세 민족이 뒤섞여 사는 투르크

레반트 타타르의 왕이 지배하는 투르크에는 세 민족이 함께 살아갑니다. 마호메트를 숭배하는 투르크인들은 가난하지만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목축이 생업이라 산이나 목초지에서 지내며 투르크종이라 불리는 훌륭한 말을 사육합니다. 

아르메니아인과 그리스인은 도시와 촌락에서 이들과 섞여 살며 상업과 수공업에 종사하는데, 특히 섬세한 카펫과 다양한 색깔의 질 좋은 비단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주요 도시로 언급된 코니아, 시바스, 카이세리는 오늘날에도 튀르키예 중부·동부에 실재하는 도시들입니다.

노아의 방주가 잠든 대아르메니아

대아르메니아는 매우 넓은 나라로, 가장 큰 도시 에르진잔(오늘날 튀르키예 동부)에는 대주교구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품질 좋은 면직물이 생산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온천탕도 있어 여름이면 레반트 타타르의 군사가 모두 이곳에 모입니다. 

마르코 폴로는 노아의 방주가 바로 이 대아르메니아의 큰 산 위에 있다고 전하는데, 오늘날 튀르키예-아르메니아 국경 근처의 아라라트 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아르메니아 북쪽 조르지아에는 한 번에 배 100척을 채울 만큼 기름이 솟는 샘이 있는데, 먹을 순 없지만 불을 붙일 수 있어 사람들이 멀리서도 구하러 온다고 적었습니다.

독수리 점을 타고난 조르지아의 왕들

조르지아(오늘날 조지아 공화국)의 왕들은 대대로 '다윗 왕'을 뜻하는 '다비드 멜릭'이라는 칭호를 가지며, 전설에 따르면 오른쪽 어깨에 독수리 형태의 점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뛰어난 전사이자 훌륭한 궁수이며, 그리스 정교회를 따르는 기독교인입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조차 이곳의 좁고 험한 길을 지나가지 못해 요새화된 망루 '철문'을 세웠다는 전설도 전합니다. 조르지아에는 성 레오나르도 수도원이 있는데, 평소엔 물고기가 살지 않는 호수에 매년 사순절 첫날부터 성토요일까지만 물고기가 수없이 몰려드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마르코 폴로는 기록했습니다.


노략질이 두려운 땅, 모술 왕국

남동쪽 국경에는 모술 왕국이 있습니다. 오늘날 이라크 북부 모술 일대를 가리키는 이 왕국은, 마호메트를 숭배하는 아랍인과 네스토리우스파·야곱파 기독교인이 뒤섞여 사는 넓은 땅이었습니다. '카톨리코스'라 불리는 총대주교가 로마 교황처럼 인도·바그다드·카타이에까지 성직자를 파견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명주실과 금실로 짠 옷감은 '모슬린'이라 불리는데, 이 지명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많은 상인이 향료와 진주까지 함께 싣고 떠났습니다. 한편 폴로는 산악 지대에 사는 쿠르드인들이 상인들을 약탈한다고 적으며 경계심을 드러냈습니다.

👣 잠시, 멈춰서서

저는 라이아스 항구 이야기에 눈길이 갑니다.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상인들이 이곳까지 와서 장사했다니, 당시 사람들의 활동 범위가 생각보다 넓게 느껴집니다. 배에서 짐을 내리고 비단을 펼쳐 흥정하는 모습도 떠올려 봅니다.

방주가 있다는 산과 사순절에 물고기가 나타난다는 호수도 기억에 남습니다. 생업과 교역을 설명하다가 전설이 불쑥 나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낯선 지명 때문에 천천히 읽게 되지만,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던 모습을 상상하며 읽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마르코 폴로가 전하는 바그다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마르코 폴로, 루스티겔로 다 피사, [동방견문록], 윤진 옮김,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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