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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견문록 ③—바그다드의 애꾸 구두장이와 동방박사 세 왕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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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에서는 두 개의 아르메니아에서 모술 왕국까지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사라센인들의 중심지 바그다드를 지나, 타브리즈와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땅들은 지금 어디인가? 바그다드는 오늘날 이라크의 수도이며, 타브리즈는 이란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주, 샤베(사베)는 이란 중부에 위치합니다. 다만 책에서 "타브리즈는 이라크라 불리는 나라"라고 한 표현은 오늘날의 이라크 공화국이 아니라, 중세 페르시아 서부 지역을 가리키던 옛 지명 '이라크 아자미(페르시아령 이라크)'를 뜻합니다. 바그다드, 칼리프의 도시 기독교인들의 교황이 로마에 거처하듯, 바그다드는 모든 사라센인들의 칼리프가 거처하는 큰 도시입니다. 도시 가운데로 큰 강이 흐르고, 그 강을 따라 18일을 가면 인도양 연안의 키시에 이릅니다. 수많은 상인이 물품을 싣고 이 길을 오갑니다.  바그다드와 키시 사이에는 바스라라는 큰 도시가 있는데, 이곳을 둘러싼 숲에는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대추야자가 자랍니다. 바그다드는 이 지역에서 가장 눈부시고 큰 도시로, 명주실과 금실로 짠 더없이 아름다운 직물이 훌륭한 방식으로 제조됩니다. 보물을 사랑한 칼리프의 최후 1255년, 대칸의 동생이자 레반트 타타르의 주군인 훌라구 칸이 바그다드를 침공해 도시를 정복했습니다. 탑 하나에 가득 쌓인 엄청난 금과 은을 본 훌라구 칸은 칼리프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용병과 기병들에게 그 보물을 나누어 주어 도시를 지키게 하지 않았느냐고. 칼리프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훌라구 칸은 "그대가 그토록 보물을 사랑하니 가장 소중한 보물을 주겠다"며 칼리프를 보물 탑에 가두고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칼리프는 나흘을 버티다 비참하게 죽었고, 그 뒤로 바그다드에는 더 이상 칼리프가 없다고 마르코 폴로는 전합니다. 애꾸눈 구두장이와 움직인 산 1275년 바그다드와 모술 사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기독교인을 증오하던 칼리프는 겨자씨 한 톨만 한 신앙으로도...